최근 창업 생태계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을 주는 건 아닐까. 올해 초부터 각 부처에서 쏟아내는 지원사업만 해도 수십 가지에 달한다.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저마다 다른 이름의 프로그램을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작년에 참여했던 한 창업 컨퍼런스에서 만난 스타트업 대표는 “지원사업 공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사업은 200개를 넘어서며 예산도 2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창업자들은 “어디에 신청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필자도 최근 지인 창업가를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정부 지원사업을 찾기 위해 하루에 2시간 이상을 할애한다고 한다. 결국 핵심 업무인 제품 개발 시간을 빼앗기는 셈이다. 지원사업이 많다는 것은 선택지가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선택에 드는 비용이 커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정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지원 정책이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부처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비슷한 사업을 중복해서 만들고, 평가 지표도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위한 R&D 자금은 과기정통부와 중기부가 동시에 운영하는데, 서류 양식부터 심사 기준까지 달라서 창업자들은 매번 새로운 형식에 맞춰 작성해야 한다. 이런 비효율은 결국 행정 비용만 늘리고 실제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자가 지난달 방문한 한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스타트업이 투입하는 시간이 영업 시간을 잠식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어떤 스타트업은 지원사업 신청을 위해 전담 인력을 두기도 하는데, 이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큰 부담이다. 또한 심사 과정에서의 불투명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부처의 사업은 심사위원 선정에 외부 압력이 개입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반해 해외 사례는 어떨까. 싱가포르의 경우 ‘Startup SG’라는 단일 브랜드 아래 모든 지원을 통합 운영한다. 창업자는 원스톱으로 정보를 얻고 신청할 수 있으며, 심사도 표준화되어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출범 이후 창업 생태계를 크게 활성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한국도 ‘K-스타트업’이라는 통합 브랜드가 있지만, 실제로는 부처별 사업이 각자 돌아가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정말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다.
비교표를 하나 준비했다. 주요국의 스타트업 지원 체계를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 국가 | 지원 체계 | 특징 |
|——|———-|——|
| 한국 | 부처별 분산 | 중복 사업 많고, 신청 절차 복잡 |
| 싱가포르 | Startup SG 통합 | 단일 창구, 표준 심사 |
| 이스라엘 | 이스라엘 혁신청 | 민간 주도, 정부는 촉매 역할 |
| 핀란드 | Business Finland | 공공-민간 협력, 글로벌 진출 지원 |
이 표를 보면 한국의 분산형 모델이 오히려 창업자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특히 이스라엘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 혁신청은 정부가 직접 자금을 집행하기보다 민간 벤처캐피탈과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실패 가능성을 시장에 맡기면서도 성공한 기업은 크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직접 ‘옥석 가리기’에 나서다 보니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이나 비효율이 발생하기 쉽다. 필자가 아는 한 벤처투자자는 “정부 과제에 선정된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실제 시장에서는 실패한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지원사업의 수를 대폭 줄이고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R&D 자금은 과기정통부로 일원화하고, 사업화 자금은 중기부로 통합하는 식이다. 둘째, 각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신청과 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 셋째, 민간의 투자 판단을 존중해 정부는 후발주자로 참여하는 방식을 더 확대해야 한다. 이미 서울경제 분석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나온 바 있다. 이 기사는 “정부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또한 최근 주목할 만한 시도도 있다. 중기부는 ‘팁스(TIPS)’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투자사를 활용한 선별 방식을 도입했고, 과기정통부도 ‘글로벌 R&D 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팁스의 경우, 민간 투자사가 발굴한 유망 스타트업에 정부가 매칭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선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지원사업의 70% 이상이 경쟁형 공모 방식이라,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로또’에 가깝다는 불만이 많다. 필자가 아는 한 창업자는 3년간 15개의 정부 과제에 도전해 겨우 2개를 따냈다고 한다. 그 시간에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냈을 거라는 아쉬움도 전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지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자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네트워크와 멘토링, 그리고 규제 완화다.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민간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필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스타트업을 접했지만, 정부 지원보다는 동료 창업자나 선배 기업가의 조언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지원 정책은 그런 ‘자생적 생태계’를 키우는 촉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관련 소식을 꾸준히 정리해 공유할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가벼운 일상 주제로 찾아뵙겠다.